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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편지/이야기 산책

변방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서울에 볼 일이 있어 비행기를 탔다.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창을 통해 제주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글썽거려졌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땅, 그러나 변방에 자리 잡아 중앙정부와 외세에 의해 휘둘리면서 갈기갈기 찢김을 당한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해 온 땅.

  4ㆍ3이 그 대표적인 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반세기 전 이 땅에서는 제주와 전혀 무관한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과 그로 인한 외세의 개입으로 도민 수만 명이 학살당하는 유혈참극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같은 도민끼리도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감내해야 했다.

  지난 수년간 제주는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중앙정부의 정책에 의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해군기지 찬반논쟁으로 도민사회가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다가 급기야는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운동까지 벌어졌다. 해군기지 예정지인 강정마을은 이웃끼리, 친척끼리, 심지어는 가족끼리도 서로 적대시하면서 아예 공동체가 파괴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제주가 또 다시 휘둘리며 찢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주민소환투표 이후 정부와 해군본부는 해군기지 건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연내착공을 목표로 하여 달음박질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한 제주도정의 협조도 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이러다가 제주는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어버린 채 상처투성이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특별자치도가 출범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아픈 역사를 반복하는 것 같아 한스러웠다.

  그런 마음이 필자로 하여금 해군기지 문제의 해결을 위한 변호사회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만들었다. 제주지원특별법을 제정하라는 변호사회의 주장을 계기로 하여 제주도민, 제주도정, 도의회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제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깨져 버린 강정마을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주가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는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제주도정은 제주지원특별법의 제정에는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남은 행정절차를 강행하여 유일한 협상의 지렛대조차 없애버리고자 하고 있다. 필자는 그런 제주도정의 모습을 보면서 당혹감과 함께 서글픔이 든다. 애써 도정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고도 하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도정인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제주도민은 중앙정부 앞에서 알아서 기며 중앙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제주도정이 아니라 제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중앙정부와 당당히 힘겨루기를 하는 제주도정을 원한다. 제주도정에게 간곡하게 부탁한다. 제주도정은 이런 도민의 여망을 등에 업고 남은 행정절차를 지렛대로 삼아 중앙정부와 다시 협상하기를 바란다. 뜨거운 열정과 설득력 있는 논리로 중앙정부를 압도하여 제주의 이익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갈라진 강정마을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제주가 변방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는 굴레를 벗어버리는데 견인차의 역할을 하는 제주도정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신용인 변호사

 

이글은 본센터 신요인 운영위원이 [제주의 소리]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