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세계군축행동의 날 국회·시민사회 공동선언
우리 세금을 무기 대신 복지에
오늘 우리는 세계군축행동의 날을 맞아 전 세계 70여 개국의 320여 개 단체들과 함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을 군사비로 사용하면서도 세계 시민들의 평화와 안전은 요원한 작금의 현실에 대해 성찰하고, 우리의 세금을 군사비가 아닌 사회 정의 회복과 지속 가능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사용하도록 요구하고자 합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반면,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묻지마식 방위산업투자의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를 물신화된 국가안보와 군비증강에서 국민의 안전과 평화협력 중심으로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오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하는 2014년 세계 군사비 지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가 지출한 군사비는 예년보다 약간 감소한 1조 8천억 달러, 한화로 약 1,968조 원에 달합니다. 한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한 이래 올해도 10위를 차지했습니다.
2015년의 한국 군사비는 전년 대비 약 4.9%, 1조 7,504억 원이 증가한 37조 4,560억 원입니다. 이는 정부 예산의 14.5%를 차지하는 매우 높은 금액입니다. 작년 국회의 예산 심의는 정부가 요구한 국방예산안 37조 5,600억 원에서 단 1,040억 원을 삭감하는데 그쳤습니다.
이렇게 거액의 군사비가 지출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고 있습니다. 교육, 보육, 의료, 주거와 같은 일상의 불안이 우리의 삶을 잠식하고 있지만,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복지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대학생의 등록금 대출 총액이 드디어 10조를 넘어선 지금, 한국군이 도입하는 모든 미국 무기 가운데 가장 비효율적이고 타당성 없는 전투기 F-35 40대를 구매하지 않으면 반값등록금 실현에 필요한 7조의 재원은 바로 마련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 예산낭비성 무기인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4대를 구매하는 8,800억 원의 예산이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가 예산 부족 핑계로 폐기되었던 국·공립 어린이집을 무려 1,400개나 지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글로벌 호크의 20년간 운용·유지비용 6조 원이면, 전국 지방의료원 34곳의 한 해 적자 655억 원을 무려 90년간 메울 수 있습니다. 국제법적으로 금지된 무차별 살상 무기인 확산탄, 차기 다련장 로켓 시스템을 포기하면, 그 3조 3,415억 원의 예산으로 ‘학교는 밥 먹으러 오는 곳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들어야 했던 경상남도 학생들에게 무려 30년 동안 무상급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실효성은 미지수이며 기존 사업과 중복되는 예산 낭비 사업인 PAC-3 등 요격 미사일 도입에 1조 5,233억 원을 쏟아 붓지 않으면, 소방관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낡고 부족한 소방 장비를 몽땅 교체하고 보강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예산이 아닙니다. 어디에 재원을 할당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당면한 삶의 위협이 무엇인지 직시하고, 예산의 우선순위를 다시 설정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또 어떻습니까? 매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연 35조 원가량, 세계에서 10번째로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는 나라에서 우리는 기본적인 구조 장비가 없어 눈앞에서 304명이 수장되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목격해야 했습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자신들이 세월호 사건 수습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발뺌했습니다. 국민 470여 명의 생사가 걸린 재난이 국가안보와 상관이 없다면 도대체 그 안보는 누구를 위한 안보일까요? 더욱이 세월호 참사 당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통영함은 만연한 방산비리의 민낯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월호 이후의 사회를 이야기한다면, 이 거대한 모순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북한의 위협이 심각한데 군비를 줄이면 어떻게 하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남한은 북한의 총 GDP에 달하는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한미군의 군비를 제외한 수치입니다. 북한이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도저히 군사비 경쟁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신뢰이지 더 많은 군비가 아닙니다.
동아시아에서 미·중·러·일 등의 군비경쟁이 치열합니다. 한국도 이들에 지지 않으려면 군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끌어야 할 중견국가 한국은 한미일 군사동맹처럼 낡은 대결구도가 아니라 평화와 협력, 상생과 공동안보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최근의 한반도 사드 배치 논란은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경제적으로는 매우 밀접하게 상호의존하나 군사·외교적으로는 갈등이 심각한 ‘아시아 패러독스’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군사비 지출이 GDP 대비 4%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는 2014년 전 세계 20개국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냉전 종식 직후였던 1990년대 초반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인류가 매년 전 세계 군사비의 5%만 빈곤퇴치를 위해 사용했더라면, 2015년까지 지구촌 빈곤 인구를 절반으로 감소시키겠다고 약속한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한국정부 역시 전 세계 빈곤퇴치를 위해 2015년까지 GNI 대비 0.25%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를 제공하겠다고 공언했으나 턱없이 부족한 금액만 할당한 탓에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어기게 됐습니다. 2015년 9월 새롭게 제시될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는 각국의 군사비 지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 없이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 군사비 증가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아시아, 그 중에서도 70년간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분쟁지역인 한국에서, 제5회 세계군축행동의 날은 말뿐인 기념일이 아니라 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군사비 지출은 세계 10위, 복지비 지출은 OECD 28개국 중 꼴찌인 한국 정부와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1. 우리는 양극화 해소, 사회 안전망 확충과 더 이상 참사 없는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해 군사비를 축소할 것을 요구합니다. 한정된 국가 예산 속에서 군사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다른 기회를 그만큼 앗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비 축소로 확보한 재원을 시민들이 일상에서 직면하는 시급한 위협을 해소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1. 우리는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것을 요구합니다. 한국 정부가 지난 세월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했던 어마어마한 직·간접적 비용에 대해 성찰해보기를 바랍니다. 군사비 증가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한반도 핵 위협 역시 이 정전체제와 군비경쟁의 산물입니다. 공격적인 무기를 도입하고 매년 군사비를 늘릴 것이 아니라,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를 시작할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현재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5.24조치 해제가 될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평화 대신 전쟁 준비가, 협력 대신 군사동맹이 앞서는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한국이 이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분쟁과 군사적 갈등을 협력 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기를 요구합니다. 군사적인 수단에 호소하거나 특정 국가를 적대시하는 군사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갈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동아시아 평화의 보루인 일본 평화헌법을 수호하고, 집단적 자위권 추구를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불러올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 편입을 거부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1. 평화가 힘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의 참여와 국경을 넘는 연대가 절실합니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그 어떤 무기보다 효과적으로 공동체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국경을 넘는 이해와 협력은 전투기와 미사일보다 빠른 갈등 해결의 길입니다. 국가가 설정한 외부의 위협이 과장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세금을 군사비에 사용할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사용할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정부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 각종 안보조약과 군사협력의 체결‧비준과정, 각종 전쟁연습과 값비싸고 공격적인 무기의 도입 등 안보정책결정과 집행과정은 그것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보다 투명해져야 하며 민주적으로 엄격히 통제되어야 합니다. 외교와 안보 정책의 우선순위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민이 결정해야 합니다.
군비 축소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입니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모든 시민이 함께 평화를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할 것을 촉구합니다.
2015. 4. 13.
제5회 세계군축행동의 날 국회·시민사회 공동선언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공동주최(가나다순)
참가단체 (총 32개)
(사)경실련통일협회, ODA Watch, 경계를넘어,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 기지평화네트워크, 남북평화재단, 녹색연합, 대전평화여성회,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비폭력평화물결, 생명평화연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정의평화위원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평화포럼,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 전쟁없는세상, 제주평화인권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택평화센터,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평화네트워크, 평화도서관 나무,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평화바닥, 평화바람,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여성단체연합,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국회의원 (총 15명)
권은희 김성곤, 남윤인순, 도종환, 박수현, 서영교, 이목희, 이미경, 이학영, 장하나, 전순옥, 정호준, 조정식, 한명숙(새정치민주연합), 정진후(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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