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게서 박탈된 삶(엄기호)
백남기 선생이 돌아가신지 한 달이 되었다.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사과하고 처벌받기는커녕 일은 점점 더 꼬여간다. 담당 주치의와 서울대병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와중에 괴담은 일부 네티즌들뿐만 아니라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퍼트리고 있다. 그들은 병실을 지키던 딸이 시댁 식구를 방문한 것을 휴양이라며 폐륜으로 몰아가고 있다. 연명치료에 대해서도 마치 유족들이 ‘적극적으로’ 방치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인간성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냐는 개탄이 이어지고 있다.
백남기 선생이 돌아가신 후 두 차례 장례식장을 방문해서 유족을 만났다. 그들을 보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상가집에서 ‘의례적’으로 입어야만 하는 까만 치마저고리를 입고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언제까지 그 상복을 입어야만 하는지 모른다. 아니 지금 유족들에게 ‘허락된’ 옷은 저 까만 옷밖에 없다. 그 분들이 저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기라도 하면 아마 득달같이 달라붙어 온갖 흉측한 말을 내뱉을 것이다. 그 옷만 입고 있을 때 유족들을 정당성은 겨우 보장된다.(이후에 다시 백도라지님을 만났을 때 ‘다행히’ 상복을 벗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유족들의 건강이 걱정이다. 마음고생이 너무 심해서 밥을 제대로 챙겨먹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더 걱정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반경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몇 미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하루 종일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해야한다. 혹 그들이 서울대병원을 떠나 그 앞의 창경궁에 산책이라도 가면 그 사진을 찍어 바로 또 아버지의 시신을 두고 고궁이 눈에 들어 오냐는 둥의 참담한 고발이 이어질 것이다.
이 때문에 유족들에게 움직임이란 앉았다 일어섰다, 가끔 절을 하는 조문객을 상대로 맞절을 하는 것만 허락된다. 마음은 마음대로 다치고, 밥은 밥대로 제대로 먹을 수 없고, 움직임은 최소로 제한된다.이런 상태에서 사람이 건강할 수가 없다. 사람은 제대로 먹고, 제대로 자고, 제대로 움직이고 활동해야‘겨우’ 타고난 대로 살 수 있다. 그런데 그 ‘겨우’를 할 수 없는 게 지금 백남기 선생의 유족들이다.
이것은 발리를 갔다 왔다 어쩌고 하면서 폐륜 운운하는 저들이 유족들에게서 박탈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니 더 나아가서는 이 나라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억울함과 진실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빼앗겨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정희진 선생이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해 말을 했던 것처럼 피해자는 오로지 ‘삶’을 박탈당한 피해자로서만 말을 할 수 있다. 피해자가 조금이라도 사회가 정한 피해자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는 피해자로서 말을 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정당하지 못한 존재’가 된다. 그는 ‘죽은 존재’로서만 재현되고, 행동할 수 있을 뿐이다.
유족들에게서 박탈당한 것은 ‘삶’이다. 당신이 오늘 아침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 놀고 걷고 눕고 떠들고 한 바로 그 ‘삶’ 말이다. 삶이란 변화하는 것이고 부딪치는 것이며 그래서 생동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이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다. 기약 없이 까만 옷 하나만 입어야 하고, 반경 몇 미터 내외를 떠날 수도 없고, 만나는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 자체가 반복이며, 지어야하는 표정이 또‘슬픔’ 하나인 삶. 이 삶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다. 이 나라에서 피해자는 오로지 ‘죽은 존재’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정희진 선생이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피해자에게 가장 큰 가해는 피해자를 만든 바로 그 폭력뿐만이 아니다. 그를 ‘살아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하는, 오로지 피해자로만 머무르게 하는 그 가해야말로 폭력이다. 지금 보수 세력이 ‘폐륜’ 운운하며 유족들에게 가하고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피해자인 유족들을 죽은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가장 잔인한 ‘죽임의 폭력’인 것이다. 그들은 이 폭력을 백남기 선생을 돌아가시게 함으로써, 그리고 유족들을 그들이 만든 피해자의 이미지에 가둠으로써 반복하고 있다.
유족들이 웃을 수 있다는 것, 고궁을 거닐 수 있다는 것,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사람을 만나 떠들 수 있다는 것, 이 삶을 유족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 조문이라는 유족들과의 만남은 기뻐야 한다.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또 그 사람들 덕분에 유족들이 까만 유니폼을 잠시 벗고 고궁을 거닐고, 친구들을 만나고, 일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유족들을 남편/아버지에게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기의 삶을 돌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삶’을 위해 우리는 싸우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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