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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편지/이야기 산책

그 입으로 ‘인권’을 ‘논’하지 말라!

인권파괴자 현병철이 주는 인권상은 받을 수 없다.

 

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인권논문 책임연구원)

 

오늘 아침 국가인권위원회 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에서 인권논문상 수상을 거부하기로 했냐는 물음에, 아예 수상작에서 우리 글을 제외하는 것이냐는 물음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 후 허무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우리는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들이 차별 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그런데 요즘 동인련은 매우 속이 쓰리다. 9년 전 위원회 건설부터 함께 하여 그동안 성소수자 인권 신장을 위한 여러 의미 있는 사업을 함께 진행해온 국가인권위원회가 완전히 망가지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으니 어찌 속이 쓰리지 않을까? 동성애혐오가 짙게 드리워있고 편견과 낙인의 벽장 속에 갇힌 성소수자들에게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보루였다는 점에서 우리의 분노와 상실감은 더하다.

 

사실 동인련은 올해 인권논문공모에 참여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반인권인사 현병철 위원장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동인련은 작년 말부터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어떤 차별에 직면하는지 밝히고자 성소수자 노동권팀을 구성했고,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일일이 만나며 이들의 차별경험을 수집하고 분석해왔다. 이런 노력들로 인해 동인련은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고 성소수자 차별 금지와 관련한 유용한 제언들을 더 많은 시민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하던 중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논문 공모에 입상하면 우리의 글이 책으로 엮여 나올 것이고, 우리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거나 소개될 것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여 고심 끝에 인권논문공모전에 응모하였고 결국 일반부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이 논문은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더 이상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행복하게 노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의 노력과 고민을 담아낸 소중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글이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논문집에 수록되는 기쁨조차 우리 스스로 거부하게 만들었으니 대단히 씁쓸하고 착잡할 일이다. 동인련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동성애 혐오자들의 눈치를 살핀 나머지 군형법 상 동성애자 차별조항을 없애자는 권고조차 보류하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인권 논문상’을 받을 수는 없었다.

 

지금 국가인권위원회의 모습은 참혹할 정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 인권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하수인 현병철을 인권위원장으로 임명했고, 그 뒤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탄압받는 노동자와 철거민들의 기대를 끊임없이 배반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인권위원과 전문위원들이 줄줄이 사퇴를 하면서까지 현 위원장에게 거센 사퇴 압력을 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위원장은 위원회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급기야 식물 국가인권위로 전락시키는 사태를 몰고 왔다.

 

특히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에게 이런 상황은 더욱 분노스럽다. 우파 기독교세력이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통에, 차별에 노출된 소수자들이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마저 난항을 겪고 있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한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무엇보다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하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그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동인련은 인권파괴자 현병철 위원장이 주는 인권논문상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것은 현병철 위원장에 대한 강력한 사퇴요구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소중한 결실이 인권논문을 수상한 것은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일이건만, 이것이 가짜 인권위원장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주는데 이용되는 것은 결코 두고 볼 수 없다.

 

이번에는 적지 않은 인권작품들이 수상명단에서 빠지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 이 사태의 책임이 있는지 돌아보라. 우리는 이 작품들이 ‘인권작품’임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현 위원장이 사퇴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자리로 돌아온다면, 아마 이번에 수상을 거부한 인권작품들도 기쁘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 때에 다양한 목소리로 인권을 이야기한 소중한 작품들을 다시금 시민사회에 온전히 소개해주기를 바란다.

 

가진 것 없고 억압 받는 소수자가 자기 손으로 인권논문상 수상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병철은 당장 물러나라. 그 입으로 ‘인권’을 ‘논’하지 말라. 당신은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