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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성명/논평

2023년 세계군축행동의 날 [기자회견]

1분에 56억, 평화와 지구를 위협하는 군사비 지출 이제 그만!

“K-방산이 대한민국을 넘어 힘에 의한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을 믿는다.” 지난 17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방산업체 최고경영자들과 만나 한 말입니다. 지난해 한국은 방산 수출로 사상 최대 금액인 173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산업연구원이 낸 방산시장 관련 보고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온 변화가 한국 같은 신흥 무기 수출국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합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사상자는 최소 21300여 명에 달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군 사상자도 10만여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전쟁 때문에 발생한 난민은 거의 800만 명에 이르며 그중 90% 이상이 여성과 어린이입니다. 전쟁이 가져다준 호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내겠다는, 오히려 죽음을 파는 장사’’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이 발언이야말로 힘에 의한 세계 평화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힘에 의한 평화라는 말은 언제나 억제를 강조합니다. 언제나 강한 무기에는 상대의 더 강한 무기가 뒤따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대북 선제공격과 한국형 3축 체계 강화를 외쳤습니다. 지난 13일 북한은 고체연료 기반의 탄도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습니다. 사전 탐지가 어려운 고체연료 미사일은 발사를 사전에 포착해 선제 타격하겠다는 3축 체계로는 대응이 어렵습니다.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자 중국은 둥펑 시리즈 미사일을 내놓으며 미사일 시스템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힘은 강한 힘을, 강한 힘은 더 강한 힘을 부릅니다. ‘힘에 의한 평화는 이처럼 군비 경쟁만 부추길 뿐 결코 어느 쪽도 평화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위해 억제가 아니라 대화와 협력과 같은 공존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이상적이라거나 현실을 모른다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5년 만에 다시 꺼내든 주적개념이 보여주는 것처럼, ‘힘에 의한 평화는 언제나 적을 강조합니다. 적을 이기기 위한 강한 힘과 그 힘이 행사되었을 때 생가는 피해 역시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불가피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난달 5년 만에 최대 규모로 한미연합군사연습이 진행되자 북한은 탄도 미사일과 순항 미사일 등의 시험 발사로 대응했습니다. 북한의 고체연료 미사일 시험 발사에 한미일은 대북 미사일 방어훈련에 돌입했고 같은 날 러시아와 중국은 대규모 훈련으로 대응했습니다.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량 공격이 발생한다면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언급하자 러시아 크렘린 대변인은 그러한 지원을 전쟁에 개입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며 보복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강대강의 대치는 위기를 끝없이 고조시킵니다. 언제든 전쟁이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이 위기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직면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전 지구적 위기 역시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습니다. 올해 세계군축행동의 날 국제 캠페인의 구호인 전쟁의 대가는 모두의 지구(War Costs Us the Earth)’라는 말은 인간이 벌인 전쟁이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 명백한 책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 세계 군사 부문의 탄소발자국을 한 국가로 간주해 계산하면 전 세계 탄소발자국의 약 5.5%로 중국과 미국, 인도에 이은 4위를 차지합니다. 오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2022년 세계 군사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가 지출한 군사비는 전년 대비 3.7% 증가한 22,400억 달러(2,980조 원)에 달합니다. 반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탄소 절감과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모으는 녹색기후기금의 2022년도 모금 약정 총액은 987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전쟁을 먹고 자라는 군사비 지출과 군비 경쟁은 전쟁 위기와 전 지구적 기후위기를 가속화할 뿐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찾아온 물가 폭등과 식량과 에너지 위기는 전 세계에 커다란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각 나라들은 앞다투어 국방비를 큰 폭으로 증액했습니다. 한국의 2022년 군사비 지출도 세계 9위로 10년 만에 한 자릿수 순위로 올라섰습니다. 2023년 한국의 국방비는 전년보다 4.4% 증가한 57조 원입니다. 전 세계 무기 획득 예산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크게 늘었습니다. 한국 국방부가 내놓은 <2023-2027 국방중기계획>2023부터 2027년까지 총 331조 원을 국방예산에 투입하고 그중 107조 원을 방위력개선비로 사용하겠다고 계획하고 있으며, 연평균 증가율은 약 10.5%에 달합니다.

이제 한정된 예산과 자원의 우선순위를 군사비가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과 사회적 불평등 해소, 평화 구축에 두어야 합니다. 군사비가 이렇게 늘어나는 와중에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한국군은 전국의 공공기관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공공부문 온실가스 절감 목표 대상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도 군사 부문은 배출통계 보고 의무 대상이 아닙니다. 한국 2023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이행현황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최하위며, 국내총생산(GDP)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4위입니다. 서울 면적의 2배가 넘는 산림이 사라지고 생물다양성 지수도 감소했습니다.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은 OECD 국가 중 11, 상대적 빈곤율은 8위이며 계속 악화되는 추세입니다. 산재 사망률도 지난해보다 증가했습니다. 정전협정 70년인 올해 남북 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북 정책에서 화해협력이나 신뢰 같은 비군사적 방안은 찾아볼 수 없으며 한반도 비핵화는커녕 핵 보유 같은 말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일상을 위협하는 실제적인 위기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불가피한 현실입니다. 더 이상 강한 안보를 핑계로 군사비를 증액하는 것이 용인되어선 안 됩니다.

2023년 세계군축행동의 날을 맞아 우리는 요구합니다.

우리의 자원을 군사비가 아니라 생명과 일상을 위협하는 실제적인 위기 대응에 사용합시다. 군사비의 방향을 돌려 기후위기 대응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 재난 예방에 사용합시다.

위기를 가중시키는 군비 경쟁을 중단하고 평화적 수단으로 평화를 만듭시다. 신뢰를 파괴하는 더 많은 무기와 군사훈련이 아니라 단계적 군축과 대화 재개로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합시다.

202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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