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구소'창'활동가들이 쓴 두번째 글

Posted by 산포
2016.11.14 17:25 인권편지/이야기 산책

사죄하라

(류은숙인권연구소 ’ 연구활동가)

 

국가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백남기 농민 사건은 공권력이 과잉 진압해 한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한 말이다.

 

물대포를 사용하여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한국의 경찰에 대한 총체적이고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한다.” “가해자는 처벌되어야 하고 백남기 농민의 가족은 적절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 “한국 정부가 이 비통한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고 백남기 님의 죽음에 대해 표명한 입장이다여러 유엔 특별보고관들도 이런 입장표명에 연명했다.

 

안팎으로 자명하다고 백남기 님의 죽음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라는 것이것은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 행위라는 것따라서 국가는 공식적인 사죄로부터 시작하여 일련의 책임지는 사죄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사죄해야 하는가?

 

잘못에 대하여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근본 규범이다우리는 부당한 일에 대하여 일단 사죄를 기대한다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로자기가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사죄를 거부하거나 고자세로 버티려할 때 피해자의 참담함은 배가된다.

 

무산된 사죄는 개인 사이에서도 큰 상처이지만시민과 국가의 관계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국가가 사죄를 거부하는 건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잘 하겠다는 다짐은 다짐이 아닌 더 큰 비극을 부르는 전주곡일 뿐이다.

 

국가의 범죄는 시민의 권리에 대한 침해이고 시민이 준 공권력을 제약 없이 휘두른 것이다공권력에 대한 제약은 시민의 인권을 지키고 증진하는 한에서만 그 힘을 사용하라는 것이다따라서 국가가 사죄를 거부하는 건 개인적 차원의 양심의 문제와 다르다국가 공권력에 대한 제약을 무시하겠다는 것이고 직분과 행위에 따른 책임을 외면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범죄와 그에 대한 책임의 공개적인 인정을 뭉개고 넘어가는 걸 용납하면정치공동체가 딛고 선 발판이 흔들리고 무너지게 된다권력행위의 대가로서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공권력과의 동거는 불안공포불신에 휘둘리고 힘에 대한 굴복과 숭상에 쏠리게 될 것이다사망진단서 발급 하나에서도 나타나는 권력의 손때가 이점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인권의식은 김빠지고 각자의 안위에 목매는 사회가 어떤 모습이겠는가공동의 문제를 부각시켜 새 길을 모색하려는 행동들이 위축될 것이다국가범죄에 관한 행적을 권력과 법으로 은폐하는 게 관습이 될 것이다권력자의 생각과 선호에 자신을 맞추려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타인이 겪는 고난을 못 본 척하거나 느끼지 못하는 잔혹함이 지배할 것이다무책임한 국가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의식 없는 각자도생의 사회를 반길 것이다그렇게 타인의 고통에서 자신의 잠재된 고통을 볼 줄 모르는 사회는 똑같은 일이 더 심각하게 재발되는 걸 내버려둘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철저하게 시민의 말을 죽이고 억압했다말을 죽이는 정부가 결국 사람까지 죽였다세월호메르스가습기 살균제강남역구의역지진과 태풍군납품비리……이어진 죽음들 속에서 국가는 어디에도 있지 않으면서 어디에나 있었다책임져야 할 데는 나서지 않았고모든 문제의 원인에 도사리고 있었다.

 

우리는 시민의 말공동의 문제를 나눌 말을 부활시켜야 한다국가의 무책임무능력적반하장을 지적하는 말을 죽일 때 납득 못할 죽음의 고리는 이어질 것이다악순환의 고리를 깨고 새 고리를 꿰기 시작하는 첫 작업말을 살리고 대화가 가능해지는 첫 시작이 국가의 공식적인 사죄이다사죄는 말로써 책임의 1번지를 확인하고 책임의 고리를 확산하고 공유하는 정치의 첫 걸음이다.

 

공식적인 사죄는 시민의 일부를 악마화하는 정치에서 벗어나 책임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책임지지 않으려는 공권력은 시민을 갈라 치는데 몰두해왔다시민들의 집회시위를 과잉 통제하는 것 자체가 이미 폭력이다어떤 시위는 권력이 직접 부추기고 심지어 돈으로까지 지원하면서어떤 시위는 위험시하고 참가자를 으로 대했다누구에 대한 기소는 신속하고 가혹하게 처리하고 누구에 대한 고발은 수사조차 안하거나 기소할 생각 없이 굼떴다이 나라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면복수의 가치와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살아가는 서로의 존재를 관용으로 대하면서 이 아니라 서로 논쟁하고 경합하는 상대로 대해야 하는 것이다그런데 국가권력이 정권의 권위와 이해관계에 도전하는 시민을 또는 비인간으로 갈라서 분류하고 처우할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를 한국의 근현대사는 똑똑히 보여준다비판적 세력 또는 이질적 집단을 적으로 상정한 공권력은 언제든지 심각한 인권침해를 일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죄는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행위이다국가의 공식적 사죄는 시민을 시민으로서 존중한다는 표시이고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공권력과 인권의 제약이라는 원칙 위해 다시 정립하겠다는 행위여야 한다공권력이 시민을 /비인간’ 또는 내 편으로 갈라온 점을 반성하고보편적 인권과 국가 책임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공식적인 사죄이다사죄는 이런 기본적 관계를 국가가 존중하겠다는 시인이다그런 책임의 시인 속에서 공유할 공적세계를 확장하는 것그것이 정치의 작동이다고인의 죽음을 함께 기억하며 연대와 책임의식으로 작동하는 정치를 말이다.

 

어떤 사죄여야 하는가?

 

사죄가 필요할 때입술로만 하는 사죄가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회와 사죄를 기대하기 마련이다하지만 지금 우리가 국가에 요구하는 사죄는 그런 내면에서의 사죄가 아니다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정치 행위에 따른 정치적 책임이고 불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따른 법적 책임이다이런 책임은 내키지 않는다고진정으로 참회할 맘이 없다고 해서 외면할 수 있는 성격의 책임이 아니다.

 

입술로만의 사죄라도일찌감치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표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물대포에 머리를 직사 당했을 때도긴 시간 사경을 헤맬 때도돌아가신 후에도,입술만의 사죄조차 없었다지나치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처럼 사죄가 지체될수록 사죄의 진정성은 흐려질 뿐이고 져야할 책임만 늘어갈 뿐이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매우 당당한 어조로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하게 한 후에 말할 수 있다결과만 두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사죄는커녕 비난도 감수 못하겠다는 태도를 고집하고 있는데비난을 수용하는 것도 사죄의 일부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더욱더 자기변호로 빠지는 사죄얼렁뚱땅 모면하려는 사죄는 통하지 않는다우리는 적절하고 유효한 사죄를 요구한다.

 

첫째국가의 사죄를 보증하는 명백한 국내외적 규범이 있다그런 규범에 따른 충실한 사죄를 요구한다국가가 가진 힘을 잘못 또는 과잉으로 휘둘러서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했을 때는 당연히 사죄해야 한다이것은 백남기대책위원회 또는 유승민 의원의 요구이기 이전에 보편적인 인권규범의 침해이다.유엔의 인권피해자권리장전을 포함한 국제인권규범은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공식적인 사죄를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단순한 유감이나 후회의 표시가 아닌 사죄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수용하겠다는 약속이다.

둘째사죄는 사죄의 주체상황이유절차를 명확히 해야 한다.

셋째사죄는 유효한 후속행위의 실천을 동반해야 한다즉 배상과 재발방지 조치를 포함해야 한다.

 

사죄 받을 권리는 사죄하라는 명령

 

공식적인 사죄는 피해에 대한 인정’ ‘진실을 알 권리’ ‘정의실현에 대한 권리’ ‘피해 배상에 대한 권리’ ‘재발방지와 제도 개혁에 대한 권리의 연쇄작용으로 이뤄진다이 연쇄과정 전반에서 국가는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으로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피해자는 피해자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당연히 인권을 가진다정부가 가하거나 부추기는 모욕과 강압은 피해자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갖는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유엔의 인권피해자권리장전에는 피해자의 만족(satisfaction)’이란 항목이 있다만족에 포함되는 게책임의 인정과 공식적 사죄이다만족이란 피해자가 흡족할만한 사죄를 의미한다가해자의 자기변명이나 상황의 모면 또는 충실한 책임 이행을 회피할 목적으로 하는 사죄를 사죄로 보지 않는 것이다.

 

사죄 받을 권리란 사죄하라는 명령문과 같다. ‘권리라는 건 그 상대방에게 그렇게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사죄 받을 권리가 권리로서 의미를 가지려면진상규명배상‧ 재발방지 보장 등 모든 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걸 포함한다나아가 사죄 받을 권리는 직접적인 피해자의 권리에 그치지 않는다재발방지조치는 피해자뿐 아니라 전체로서의 사회구성원들과 직접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억과 애도는 거듭된 사죄로 표시된다

 

공식적인 사죄는 일회성이 아니라 거듭돼야 한다우리는 달력에서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만 보는 게 아니다어떤 사건과 의미가 되돌아옴을 거듭 느낀다사죄는 한번으로 해치우는 게 아니라 새기고 거듭돼야 한다또한 국가의 공식적 사죄 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죽음에 대한 기억과 애도를 공유하는 것도 거듭된 사죄의 중요축이다사죄가 지속된다는 것은 우리가 책임의식을 공유한다는 것이고 그런 책임의식이야말로 재발방지의 기본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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