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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편지/이야기 산책

[칼럼]재판부는 과연 법률적 판단을 했는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면 강정마을 해안을 매립해야 한다. 그런데 강정마을 해안은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고 제주특별자치도의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라고만 하겠다) 상 절대보전지역에서는 매립행위를 할 수가 없다. 이에 제주도정은 국책사업인 해군기지건설사업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강정마을 해안에 대한 절대보전지역 지정을 해제하는 처분(이하 본건 처분이라고만 하겠다)을 하였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본건 처분은 특별법과 제주특별자치도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이하 도조례라고만 하겠다)가 정한 기준을 위반하였을 뿐 아니라 주민의견수렴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도의회의 동의 역시 날치기로 처리하였으므로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올해 초 제주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제주지방법원은 지난 15일 본건 처분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아니한 채 각하판결을 하였다.

 특별법 등 관련 법규에 비추어 보면 절대보전지역변경처분과 관련하여 강정마을 주민들이 가지는 이익은 단순한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여 법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이익이 아니므로 원고적격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재판부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법원은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도 법률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이례적으로 이해를 구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문제로 인해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는 등 수년 동안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 그런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할 권리조차 없다는 법원의 ‘법률적 판단’을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 한편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이번 판결은 ‘법률적 판단’을 하지 않은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번 판결은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해군기지사업이 아닌 본건 처분을 기준으로 삼는 잘못을 저질렀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어떠한 처분으로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있는지 여부는 당해 처분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나 사업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재판부는 본건 처분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인 해군기지건설사업을 기준으로 삼아 강정마을 주민들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서울 행정법원의 경우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기한 국방부장관의 국방ㆍ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승인처분의 무효 여부를 다투는 소송에서 원고적격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국방ㆍ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승인처분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은 본건 처분으로 이루어지는 사업과 똑같은 해군기지건설사업이다. 재판부가 원고적격에 관한 한 서울 행정법원과 달리 판단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국방ㆍ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승인처분과 본건 처분은 서로 별개의 처분이라고 하며 원고적격을 부정함으로써 서울 행정법원의 판단과 모순되는 판단을 하였다.

백번을 양보해서 해군기지건설사업이 아닌 본건 처분을 기준으로 삼아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번 판결은 문제가 있다. 본건 처분의 근거법규인 도조례는 절대보전지역 관련 처분이 주민들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아 주민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주민의견수렴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본건 처분은 그 절차를 거치지 않아 그 위법성 여부가 이번 소송의 쟁점 중 하나였다. 만일 이번 판결대로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반사적 이익만 있다면 법이 구태여 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를 별도로 규정할 이유가 없다. 법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 스스로가 절차를 둔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에서 주민의견수렴절차를 규정한 것 자체가 강정 주민들에게는 단순한 반사적 이익 아닌 법률상 보호이익이 있다는 취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근거법규의 규정취지마저도 몰각시키는 판결을 하였다.

다음으로 이번 판결은 원고적격의 인정범위를 계속 확대하고 있는 대법원의 추세에도 반한다. 대법원은 국민의 권리구제 차원에서 과거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고 본 것들을 가능하면 법에 의해 보호되는 이익으로 해석하여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법원의 이런 추세조차 외면하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점은 이번 판결로 인해 특별법과 도조례에서 정한 절차와 기준에 관한 규정들이 절대보전지역 해제와 관련해서는 모두 사문화(死文化)되어 버릴 위기에 처해졌다는 점이다. 이번 판결은 절대보전지역과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지역 주민들조차 원고적격이 없다고 판시하였는데 이에 따른다면 이제는 그 어느 누구도 원고적격을 인정받을 수가 없다. 이는 절대보전지역의 해제와 관련해서는 아무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도지사가 특별법과 도조례에서 정한 기준과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제멋대로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하더라도 법적으로는 문제를 삼을 수가 없다. 예컨대 도지사가 도의회의 동의도 얻지 않고 제주도 내 절대보전지역 전부를 몽땅 해제해 버린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이를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인해 도지사가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할 법원 스스로가 법치주의를 허무는 판결을 한 셈이다.

이처럼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와 근거법규의 취지를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허무는 판결을 하고서는 법률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은 법률가인 필자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법원은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다. 국가권력이나 공권력이 법을 무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때 힘이 약한 국민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국민이 그 억울함을 법원에 호소하면 법원은 잘잘못을 따져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줘야 한다. 그게 법원의 헌법적 책무이다. 이번 소송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다. 법원은 마땅히 본건 처분이 위법한지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 그래서 위법하다면 그 처분을 취소해서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고통을 받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지는 것 같다.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가 천막농성을 시작하였고, 강정마을회도 이번 판결에 격하게 반응하고 있다. 필자로서는 제2의 4ㆍ3과도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신용인 교수(제주대) <제주의소리>

※ 이글은 제주의 소리에 실린 신용인 운영위원의 글입니다.